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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직원'은 왔지만 자율은 오지 않았다 - NIA 트렌드 2편, 반년 뒤 다시 보기

'디지털 직원'은 왔지만 자율은 오지 않았다 - NIA 트렌드 2편, 반년 뒤 다시 보기

M. · · 11 분 소요

예측과 지금을 견주면: 에이전트는 방향대로 왔다, 단 ‘자율’만 빼고 (🟢, 일부 🔵) NIA의 두 예측을 반년 뒤 실제 전개와 나란히 놓고 본다. 예측② 멀티에이전트 표준은 예측보다 빠르게 수렴했고(🔵), 예측① 디지털 직원은 명사는 왔지만 그 명사를 정의하던 형용사 ‘자율’이 빠졌다(🟢). ROI 실패율과 거버넌스 공백은 두 예측 어디에도 없었다(⚪).

0편에서 정한 대로, NIA가 트렌드 2에 걸어둔 두 예측 문장을 각각 실제 전개와 견줘본다. 1편과 같은 방식이다.

NIA가 트렌드 2 「스스로 일하는 AI 에이전트, 협업·자동화로 재편」에 세운 예측은 두 개다.

  • 예측①: 지시 수행을 넘어 업무 과정을 자율 수행하는 ‘디지털 직원’이 등장한다.
  • 예측②: 소형 에이전트가 협력하는 멀티 에이전트 시스템이 부상한다.

두 예측을 관통하는 한 단어는 ‘자율’이다. NIA는 에이전트가 스스로 일을 처리하는 능력을 트렌드의 핵심으로 봤다. 반년의 전개는 이 능력이 도달했는지를 묻는 게 아니라, 도달한 능력이 곧 신뢰와 가치로 이어졌는지를 묻게 만든다. 그리고 그 두 개가 갈렸다.

반년을 지켜본 결과를 한 줄로 줄이면 이렇다. 기술과 표준과 플랫폼은 예측보다 빠르게 수렴했는데, 가치와 신뢰와 거버넌스는 그 속도를 못 따라가 간극이 벌어졌다. NIA는 무엇이 오는지는 맞게 봤고, 그것이 얼마나 믿을 만한지는 묻지 않았다.

예측② 멀티에이전트 표준 - 적중, 예측보다 빠르게 (🔵)

두 예측 중 가장 강하게 실현된 쪽부터 본다. “소형 에이전트 협력”이라는 예측은 반년간 표준의 수렴이라는 형태로, 예측보다 빠르게 현실이 됐다.

가장 큰 신호는 표준 전쟁이 이미 끝났다는 것이다. 에이전트끼리 도구를 부르고 서로 대화하고 값을 치르는 세 계층의 규격이 반년 만에 한자리로 모였다. 앤스로픽이 만든 MCP(모델 컨텍스트 프로토콜, Model Context Protocol), 구글이 만든 A2A(에이전트 간 통신, Agent-to-Agent), 그리고 결제용 AP2(에이전트 결제 프로토콜, Agent Payments Protocol)가 모두 리눅스 재단(Linux Foundation) 산하로 이관됐고, 앤스로픽·오픈AI·구글·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이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경쟁 규격들이 서로를 밀어내는 대신 계층별로 역할을 나눠 가진 것이다.

수렴은 채택 숫자로도 뚜렷하다.

표준범위만든 곳반년 채택 (2026 H1)
MCP에이전트와 도구 연결앤스로픽 (2024.11 → 2025.12 리눅스 재단)9,700만 SDK 다운로드
A2A에이전트 간 통신구글 (2025.4 → 리눅스 재단, v1.0 2026.4)150개+ 조직, 깃허브 2만 2천 스타
AP2에이전트 결제구글·코인베이스 (2025.9, v0.2 2026.4)결제·금융사 60개+

세 클라우드 대기업이 이 표준을 자기 플랫폼에 실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코파일럿 스튜디오와 애저 AI 파운드리를 2026년 4월 정식 출시하며 A2A를 넣었고, 아마존은 베드록 에이전트코어로, 구글은 자체 에이전트 개발 키트(ADK)로 같은 표준을 지원한다. IBM은 자사 규격 ACP를 A2A에 흡수시켰다. 규격을 둘러싼 싸움이 끝나고 계층별 보완으로 넘어간 이 국면은, “멀티 에이전트 시스템이 부상한다”던 예측②를 오히려 앞질렀다.

이 표준들은 발표에 그치지 않고 공급망·금융·보험·IT 운영 현장에 실제로 들어갔다. 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세일즈포스·SAP·서비스나우가 자기 제품에 얹었고, 도이체방크 같은 금융사도 도입했다. 다만 여러 에이전트를 한곳에 등록하는 중앙 등록소가 단일 장애점이 되거나, 어느 에이전트에 어디까지 권한을 줄지를 세밀하게 관리하는 장치는 아직 미완이라는 숙제가 남아 있다.

한국도 이 흐름에 올라탔다. 삼성SDS는 자사 플랫폼 패브릭스(FabriX)에 MCP 연계를 넣었고, 행정안전부는 ‘지능형 업무관리 플랫폼’ 구축에 183억 원을 배정하며 사업 요건에 MCP를 명시했다(삼성SDS·네이버클라우드 참여). 구글 클라우드 기준 아시아태평양의 에이전트 배포는 2025년 한 해 340% 늘었다.

표준의 확산은 곧 공격면의 확산이기도 하다. 에이전트끼리 연결되는 통로가 늘어난 만큼 프롬프트 인젝션 같은 공격 경로도 함께 늘었는데, 이 보안 측면은 트렌드 5(AI 보안)에서 별도로 다룬다. 이 편은 표준이 얼마나 빠르게 수렴했는지까지만 본다.

예측②는 방향도 속도도 예측대로였다. 에이전트가 서로 붙는 배관은 예측보다 빨리 깔렸다. 여기까지는 NIA가 잘 봤다. 다만 배관이 깔렸다는 것과 그 위로 믿을 만한 것이 흐른다는 것은 다른 문제인데, 그 간극은 예측①에서 드러난다.

예측① 디지털 직원 - 명사는 왔고 형용사는 빠졌다 (🟢)

예측①은 다르다. ‘디지털 직원’이라는 명사 자체는 반년간 실제로 등장했다. 코딩·고객서비스·영업 발굴 같은 자리에서 에이전트가 프로덕션에 들어갔다. 문제는 NIA가 그 앞에 붙인 형용사, ‘자율 수행’에 있다.

명사가 왔다는 근거는 충분하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에서 프로덕션 배포율이 53%, 고객서비스가 62%에 이르고, 각 직무에서 payback(투자 회수)까지 걸린 기간도 짧게는 넉 달 안쪽이다. 그런데 같은 표를 세로로 읽으면 다른 그림이 보인다. 규제와 감사가 걸린 부서로 갈수록 사람이 개입하는 비율(HITL, 사람 개입, Human-in-the-Loop)이 치솟고 회수 기간도 늘어진다.

직무프로덕션 배포paybackHITL(사람 개입)
영업 발굴(SDR)41%3.4개월8%
고객서비스62%4.7개월32%
데이터·분석34%5.8개월26%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53%6.2개월21%
재무·운영28%8.9개월37%
법무·컴플라이언스12%11.2개월61%

법무 부서에서 사람 개입이 61%라는 것은, 에이전트가 일을 하되 결정은 사람이 쥔다는 뜻이다. ‘자율 직원’이 아니라 ‘초안 작성자’에 가깝다. 그리고 이 개입은 조심스러워서가 아니라, 자율로 맡기면 실제로 깨지기 때문이다.

깨지는 방식은 벤치마크에서 이미 드러난다. 겉으로 보이는 점수는 포화 상태에 가깝다. 소프트웨어 수정 능력을 재는 SWE-bench Verified에서 최상위 모델이 90%를 넘겼다. 하지만 같은 작업을 여러 번 연속으로 시켜 보면 신뢰성이 무너진다. 통신 업무 벤치마크 tau2-bench에서 한 번은 90%를 맞히던 에이전트가, 같은 작업을 여덟 번 연속 성공시키는 확률(pass^k, k회 연속 성공률)로 재면 57%로 떨어진다. 한 번 되는 것과 매번 되는 것 사이의 이 간극이 바로 프로덕션이 요구하는 지점이다.

더 나쁜 신호도 있다. UC 버클리 연구진이 2026년 4월 내놓은 결과에 따르면, 한 에이전트가 SWE-bench Verified와 터미널 벤치를 단 하나도 실제로 풀지 않고 100% 편법(reward hacking)으로 통과했다. 열 줄짜리 설정 파일 하나로 500개 테스트를 전부 통과시키는 식이었다. 점수는 능력이 아니라 채점 방식의 허점을 가리키고 있었던 셈이다.

에이전트가 얼마나 오래 혼자 일할 수 있는지를 재는 지표도 아직 조심스럽다. METR이 측정한 작업 지속 시간(time horizon)은 최상위 모델이 절반의 확률로 12시간 안팎을 버티는 수준인데, 그 이상 구간은 표본이 적어 측정 자체를 신뢰하기 어렵다고 METR이 스스로 밝혔다. 짧은 작업의 정확도와 긴 작업의 지속력은 같은 곡선 위에 있지 않다.

장기 실행에서 무너지는 양상은 더 구체적이다. 작업을 오래 끌수록 에이전트는 작업 기억이 부패하고(working-memory rot), 맥락을 압축하다 정보를 잃고(lossy compaction), 지시의 문자만 충족하고 의도를 파괴하며(ugly wish-granting), 기능적으로는 돌아가지만 틀린 결과를 사람 개입 없이 통과시킨다(functional but wrong). 그래서 에이전트의 메모리는 단순 저장소에서 실행 상태를 관리하는 층으로 진화하는 중이다.

---
config:
  look: handDrawn
  theme: neutral
---
flowchart LR
    A["앱에 내장<br/>80%"] --> B["실제 프로덕션<br/>31%"]
    B --> C["전사 확산<br/>23%"]
    C --> D["EBIT 효과 보고<br/>39% (대부분 5% 미만)"]

이 간극은 도입 단계에서도 그대로 보인다. 에이전트 기능이 앱에 내장된 비율은 80%에 이르지만, 실제 프로덕션에서 운영되는 비율은 31%, 전사로 확산된 비율은 23%로 떨어진다. 파일럿의 88%가 프로덕션에 못 가고 폐기된다. 명사는 거의 모든 소프트웨어에 들어왔는데, 그 명사가 형용사값을 하는 자리는 3분의 1도 안 된다. 그래서 🟢, 방향은 맞고 그 핵심 형용사가 빠진 경우다.

NIA가 아예 못 본 것 - ROI 실패율과 거버넌스 공백 (⚪ 미포착)

두 예측 어디에도 이름이 없는 두 개의 1급 변수가 있다. NIA는 에이전트의 능력만 봤고, 그 능력이 실패하는 방식과 그 실패를 누가 책임지는지는 예측에 넣지 않았다.

첫째는 ROI(투자수익률, Return on Investment)의 실패율이다. 도입이 늘어난 만큼 실패도 쌓였다. MIT의 2025년 조사에서 통합 파일럿 중 실제로 수백만 달러 가치를 낸 것은 5%뿐이었다. 흥미로운 건 성공률의 갈림인데, 외부 벤더를 쓴 경우 성공률이 67%인 반면 자체 구축은 33%로 절반이었다. 맥킨지 조사에서 영업이익(EBIT) 수준의 효과를 보고한 기업은 39%였지만 그 대부분이 5% 미만이었다. 가트너는 2027년까지 에이전트 프로젝트의 40% 이상이 취소될 것으로 봤다.

다만 이 취소율을 실패로만 읽으면 절반만 본 것이다. 2025~26년은 많은 기업이 에이전트에 처음 예산을 붙인 해였고, 2027년은 그 예산이 처음 검토대에 오르는 시점이다. 40% 취소는 붐이 꺼지는 신호라기보다, 첫 예산 주기가 옥석을 가리는 정리(reset)에 가깝다. 실제로 실패의 근본 원인은 모델 성능이 아니라 준비 안 된 데이터인 경우가 많았다. 자체 구축이 외부 벤더의 절반 성공률에 그친 것도 같은 이유로 읽힌다. 모델이 아니라 그것을 태울 데이터와 업무 흐름이 준비 안 된 것이다.

이 정리 과정은 일자리에도 자국을 남겼다. 스탠퍼드 HAI 조사에서 22~25세 소프트웨어 개발자 고용은 약 20% 줄었고, 기업의 17%가 이미 AI로 인력을 줄인 경험이 있으며 30%가 앞으로 그럴 것으로 봤다. 다만 그 형태는 대량 해고보다, 사람이 나간 자리를 안 채우거나 외주를 줄이는 쪽으로 먼저 나타났다. 없어지는 자리와 새로 생기는 자리가 같은 곡선 위에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이 전환의 속도와 방향도 예측이 잡지 못한 축이다.

둘째는 거버넌스와 책임 귀속의 공백이다. 에이전트가 스스로 행동할수록, 그 행동이 어긋났을 때 누구 책임인지를 정하는 규칙이 필요해진다. 그런데 이 규칙이 능력보다 한참 뒤처졌다. 유럽연합의 AI법은 채용·신용평가 같은 고위험 용도에 사람 감독과 생애주기 로그 보관을 의무화하며 2026년 8월 발효를 앞뒀지만(디지털 옴니버스로 2027년 12월 연기 제안이 나와 불확실), 정작 EU와 미국 표준기구(NIST) 모두 애초에 자율 에이전트를 전제로 설계된 규칙이 아니다. 맥킨지가 500개 조직을 본 결과, 에이전트 통제 성숙도가 3단계 이상인 곳은 30% 안팎에 그쳤다. 책임 있는 AI 성숙도 자체가 5점 만점에 평균 2.3점에 머물렀고, 성과가 좋은 상위 기업은 사람 개입 검증 체계를 65% 갖춘 반면 일반 기업은 23%에 그쳤다. 통제 역량의 격차가 곧 성과의 격차로 이어진 셈이다.

여기서 형식적 개입과 실질적 개입이 갈린다. 사람이 그냥 ‘승인’ 버튼을 누르는 의례적 감독(ceremonial oversight)은 법적 방어로 인정받지 못한다. 맥락을 이해하고, 멈출 수 있는 스위치가 있고, 뒤집을 권한이 있어야 적법한 개입이다. 앞의 HITL 표에서 법무 부서의 61%가 바로 이 실질적 개입 쪽인데, NIA의 예측에는 이 축이 통째로 빠져 있다.

이 공백은 플랫폼 경쟁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배포됐다는 숫자와 실제로 쓰인다는 숫자가 벌어진다.

플랫폼지표 (2026 H1)짚을 점
앤스로픽연환산 매출(ARR) $30B, 엔터프라이즈 80%코딩 부문 강세
오픈AIARR ~$25B, 주간 사용자 9억+소비자 비중 높음
MS 코파일럿4억 2천만 사용자, 라이선스 1억 6천만활성 전환율 35.8% (배포 ≠ 사용)
세일즈포스 에이전트포스ARR $800M → $1B, 계약 2만 9천 건좌석 대체가 좌석 라이선스 잠식

코파일럿의 활성 전환율 35.8%는, 라이선스를 산 사람 셋 중 둘은 실제로 안 쓴다는 뜻이다(참고로 챗GPT는 83.1%). 여기에 카니발리제이션(자기잠식) 딜레마가 겹친다. 에이전트가 좌석의 80%를 대체하면 좌석 라이선스 80%를 해지하는 게 맞는데, 그러면 벤더 매출이 무너지므로 종량제와 프리미엄 좌석을 기형적으로 묶는 가격표가 나온다. 실제로 과금 방식은 좌석당(코파일럿 월 $30)·행동당(에이전트포스 건당 $0.10)·대화당·부가 요금(서비스나우 프로플러스 +50~60%)으로 갈라지는 중이고, 그만큼 기업은 토큰과 API 호출을 실시간으로 감시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능력은 수렴하는데 그 능력으로 돈을 버는 방식은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

여기서 하나 더 짚을 것은, 위의 숫자들이 대부분 벤더가 내놓은 것이라는 점이다. 시장 규모 추정만 해도 에이전트의 정의에 따라 두세 배씩 벌어지고, 벤더가 후원한 조사일수록 낙관 쪽으로 기운다. 앤스로픽의 매출 규모를 두고 오픈AI가 회계 기준을 문제 삼은 논쟁도 있었다. 그래서 이 표는 순위표라기보다, 배포와 사용, 계약과 매출 사이의 간극을 읽는 자료로 보는 게 맞다.

한 가지 짚을 점 - 승부는 ‘자율’이 아니라 오케스트레이션에서 난다

이 비교를 한국에 대입하면, 통념과 다른 우선순위가 드러난다.

한국은 도입 의지와 속도만 보면 세계 최상위다. 그것도 총수가 직접 미는 방식이다. 삼성전자는 2026년 6월 사무직 부문에 챗GPT·제미나이·클로드를 함께 쓰는 멀티 LLM 체계를 공식 도입했고(이재용 회장 “조직의 DNA를 바꿔야”), 삼성SDS는 패브릭스와 브리티 코파일럿을 20만 임직원에 깔며 코드 전환 에이전트에서 변환율 98.8%, 개발비 68% 절감을 보고했다. LG전자는 2~3년 내 생산성 30% 향상을 목표로 걸었고, SK텔레콤은 ‘A.Biz Cowork’를 25개 관계사에 폈다. 네이버는 클로바X의 개인용(B2C) 서비스를 2026년 4월 종료하고 기업용(B2B) 하이퍼클로바 X에 집중했다.

도입은 이렇게 앞서는데, 그 아래 깔린 모델과 표준에서는 한국이 여전히 따라가는 쪽이다. 한국 민간의 AI 투자 규모는 미국의 2.1%에 그친다(KDI). 업스테이지의 솔라(Solar) 신모델이 일부 지표에서 GPT-5·클로드에 근접하고 LG의 엑사원(EXAONE)이 한국어·산업 특화로 자리를 잡고 있지만, 앞서 본 표준 세 계층(MCP·A2A·AP2)의 설계 테이블에 한국 기업의 자리는 없었다. 도입은 1등인데 규격은 수입한다.

결제 표준에서도 자리는 비슷하다. 카카오의 선물하기, 네이버의 검색에서 쇼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에이전트 결제의 후보지만, 앞서 본 AP2 같은 글로벌 결제 규격의 설계에 한국의 직접 참여는 약하다. 도입은 앞서고 규격은 수입하는 구도가 결제에서도 반복된다.

그래서 반년의 비교가 가리키는 한국의 지렛대는 ‘자율 에이전트를 얼마나 빨리 까느냐’가 아니다. 앞의 모든 데이터가 한 방향을 가리킨다. 명사는 이미 왔고, 승부는 그 명사에 ‘자율’을 붙일 수 있느냐가 아니라, 붙지 않는 명사를 사람이 얼마나 잘 오케스트레이션하느냐에서 난다. 실행자에서 오케스트레이터로의 이 전환은 이미 조직도에도 나타나는데, 조사 대상 기업의 56%가 ‘AI 에이전트 오너’라는 신규 직책을 만들었다.

이 프레임은 에이전트를 파는 쪽에서도 같은 모양으로 나온다. 리플릿(Replit)의 암자드 마사드와 스콧 케네디는 2026년 7월, 자사 운영을 ‘자율주행 회사(self-driving company)‘로 정리한 글을 냈다. 벤더가 자기 성과를 보고한 것이라 액면대로 볼 자료는 아니다. 그런데 정작 그들이 내린 정의가 “사람 없는 회사가 아니라 사람이 목적지를 정하는 회사”였고, “실행자(doers)가 디렉터(directors)로 승진한다”였다. 회사 전체 코드 기여가 반년 만에 5.8배로 뛰고 코드 변경 검토(PR, Pull Request)의 30%가 사람 없이 에이전트 승인으로 넘어가는 동안에도, 그들이 그린 그림의 운전대는 여전히 사람이 목적지를 고르는 자리에 있었다. 에이전트를 파는 회사가 그린 가장 낙관적인 그림조차, 자율이 아니라 오케스트레이션이었다. ‘자율주행’이라는 이름부터가 그렇다. 자율주행차도 목적지는 사람이 고른다.

거버넌스를 도입의 최전선에 함께 놓으려는 움직임은 한국 기업에서도 보인다. 삼성SDS는 여러 LLM을 온프레미스에서 묶는 멀티에이전트 운영체제 격의 패브릭스 2.0을 2026년 10월에 내놓겠다고 예고하며 라이프사이클 관리와 레드팀을 함께 걸었고, SK텔레콤은 CEO 직속으로 ‘AI 보드’를 두며 제로 트러스트를 전제로 인프라를 설계했다. 뒤처진 규격을 좇는 것보다, 도입 속도에 걸맞은 통제 체계를 먼저 갖추는 이 자리가 한국이 실제로 쥘 수 있는 쪽에 가깝다.

여기서부터는 매일 코딩 에이전트를 돌리며 본 것을 덧붙인다. 에이전트를 실제로 붙여 보면, 부족한 건 모델의 추론력이 아니라 대개 맡길 만한 데이터와 맡길지 말지를 가르는 판단이다. 자율로 풀어 두면 pass^k가 말하는 그 지점, 한 번은 되고 매번은 안 되는 자리에서 조용히 어긋난다. 그래서 실무에서 진짜 값이 오르는 것은 에이전트의 자율성이 아니라, 어디까지 맡기고 어디서 잡을지를 아는 사람 쪽이다. 트렌드 2의 진짜 변별은 모델 성능표가 아니라, 로그를 투명하게 남기고 잘못됐을 때 책임 소재를 짚을 수 있는 거버넌스 성숙도에 있다. 그 성숙도가 결국 자율성을 어디까지 허용할지의 결정권을 쥔다.

마무리 - 오는 것은 맞고, 믿을 수 있는지는 다른 문제였다

트렌드 2를 예측과 견주면 이렇게 정리된다.

항목예측 대비한 줄
예측① 디지털 직원(자율 수행)🟢명사는 왔고 ‘자율’이라는 형용사가 빠짐
예측② 멀티에이전트 시스템🔵표준이 예측보다 빠르게 한자리로 수렴
미포착ROI 실패율·취소율, 거버넌스와 책임 귀속 공백
트렌드 종합🟢방향 적중, 단 신뢰와 가치가 능력을 못 따라감

예측②(멀티에이전트 표준)는 적중을 넘어 예측보다 빨랐고, 예측①(디지털 직원)은 명사는 왔지만 그것을 정의하던 ‘자율’이 빠진 채로 왔다. 그리고 ROI 실패율과 거버넌스 공백이라는 두 변수는 예측 어디에도 없었다.

1편에서 인프라의 승부처가 칩이 아니라 칩 뒤의 병목이었듯, 트렌드 2의 승부처도 ‘자율 능력’이 아니라 그 능력을 믿고 맡길 수 있게 하는 것들, 곧 신뢰성과 거버넌스로 옮겨가 있었다. NIA는 에이전트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맞게 봤고, 그것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는지는 애초에 예측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이것도 1편과 같은 시차 이야기다. 1년 전 담론에서 ‘에이전트’는 능력의 단어였지 신뢰의 단어가 아니었다. 그래서 능력은 예측에 잡혔고, 반년간 실제 승부를 가른 신뢰성과 책임 귀속은 예측 밖에 남았다. 트렌드 2가 보여주는 것은, 능력이 빠르게 오는 국면일수록 그 능력이 도착한 자리와 그것을 믿을 수 있는 자리 사이의 거리가 오히려 벌어진다는 사실이다.

다음 편에서는 트렌드 6, 자국 기술 주권을 같은 방식으로 견줘본다. 여기서 잠깐 스친 표준 수입국의 자리가, 규범 경쟁에서는 어떻게 나타나는지 본다.


비교 대상 원문은 NIA, 「NIA가 전망한 2026년 12대 AI·디지털 트렌드」(IT & Future Strategy 제6호, 2025.12.31)이다. H1 2026 전개의 근거는 리눅스 재단·각 표준 명세, 앤스로픽·오픈AI·마이크로소프트·세일즈포스·서비스나우 IR, 가트너·맥킨지·MIT NANDA·IBM, UC 버클리 RDI·METR, EU·NIST, 삼성전자·삼성SDS·SK텔레콤·LG전자·네이버·업스테이지, KDI 등 1차 자료를 우선했다. 리플릿의 ‘자율주행 회사’ 글(2026.7.16)은 벤더 자사 운영 보고임을 명시하고, 중립 증거가 아니라 운영자 시각의 사례로만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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