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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갇혔나 — 정부 SW 단가, 한컴, SI 외주의 30년

어떻게 갇혔나 — 정부 SW 단가, 한컴, SI 외주의 30년

M. · · 4 분 소요

공공 SW 단가, 한컴·그룹웨어 NIH, SI 외주화 30년이 만든 build 고착의 형성 메커니즘.

한국 SW 시장은 어떻게 build에 갇혔나

0편: 한국이 SW를 안 사는 시장인 이유에서 한국 SW 지출 GDP 비중이 51위, R&D는 1위라는 모순을 봤다. 이 글은 그게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30년 역사로 되짚는다.

build 고착은 우연도, 본성도, 보수성도 아니다. 1990년대 공공 SW 발주 단가 정책, 한컴·그룹웨어로 대표되는 자체 개발 선호, IT 외주화의 30년이 누적된 결과다. 세 축이 서로를 강화하면서 굳어 온 구조다.

첫 번째 축 — 공공 SW 단가의 굴레

한국 SW 시장은 1990년대부터 공공 발주가 견인했다. 정부 부처·공공기관·금융기관이 발주하는 시스템 구축 사업이 시장을 키웠다.

문제는 발주 단가의 구조다. 공공 SW 사업 대가산정은 인력 투입형 모델로 굳었다.

  • “이 시스템을 만드는 데 개발자 N명 × M개월”이 단가의 출발점
  • 측정 단위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얼마나 오래 일했는가
  • 라이선스·구독·결과 기반 가격은 적용되기 어려운 구조

이 모델에서는 패키지 SW나 SaaS는 단가 산정 자체가 어색하다. SaaS는 “5명이 6개월”로 표현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공공 발주는 build (외주 인력 투입) 형태로 표준화되었고, 그 표준이 민간 발주에도 영향을 주었다.

공공 발주 단가가 build를 표준으로 만들었고, 민간이 그 표준을 따라갔다.

한컴 vs M365 — NIH의 클래식 케이스

같은 시기, 한국에서 자체 SW 개발 선호의 상징이 된 사례가 한글과컴퓨터의 한컴오피스다. 글로벌에서는 Microsoft Office가 사실상 표준으로 자리 잡았지만, 한국은 공공 부문을 중심으로 한컴오피스를 유지해 왔다.

이 선택은 단순한 NIH(Not Invented Here)가 아니다. 공공 발주 단가 모델 안에서 “외산 라이선스 비용”은 합리화하기 어려웠고, 자체 개발한 한컴오피스 도입은 정책적으로 옹호 가능했다. 즉 공공 SW 단가 구조와 자체 개발 선호가 서로를 강화했다.

같은 패턴이 그룹웨어·ERP·CRM에서 반복되었다. 글로벌에서 SaaS가 표준화될 때 한국은 SI에 발주해 자체 시스템을 구축하는 모델을 유지했다. 이게 한국이 “패키지를 살 시장”이 아니라 “패키지를 만들게 시킬 시장”이 된 첫 번째 메커니즘이다.

두 번째 축 — IT 외주화의 30년

1990년대 후반, IMF 외환위기를 거치며 한국 대기업·금융기관은 IT 인력의 외주화를 빠르게 진행했다. 사내 IT 부서를 분사하거나 SI 자회사로 이관하고, 본사 IT는 “기획·운영” 중심으로 슬림화했다.

이게 만든 결과는 두 가지다.

  1. 사내 엔지니어링 조직의 빈약: 본사에 직접 build할 인력이 거의 없다.
  2. SI 산업의 비대 성장: 삼성SDS, LG CNS, SK C&C 같은 SI 3사가 그룹사 IT를 도맡으며 거대 사업으로 성장.
시기모델결과
1990s 초사내 IT 부서일부 자체 개발, 일부 외산 도입
1990s 말외주화·분사사내 엔지니어링 약화, SI 자회사 성장
2000sSI 3사 시대그룹사 IT가 SI에 종속, 글로벌 SaaS 진입 어려움
2010s클라우드 등장글로벌 SaaS 시도, 그러나 SI 모델 여전히 우세
2020sAI 등장sLLM·자체 build 시도, SI 외주 관성과 충돌

이 30년의 누적이 오늘 한국이 직면한 구조다. 사내 엔지니어가 직접 build하기에는 인력이 없고, SI에 외주하면 build이긴 하나 SaaS·AI 시대의 사내 빌드와는 다른 메커니즘이다.

”맞춤형 build” 문화의 자기강화

SI 외주가 표준이 되면서 한 가지 문화가 굳었다 — “우리 회사 프로세스는 특수해서 표준 SaaS로 안 맞는다”는 인식. 영림원소프트랩이 일본에서 발견한 차이가 정확히 여기다 (자세한 케이스는 2편에서 다룬다). 일본 중견기업은 SaaS ERP의 1,000+ 화면을 한 줄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도입한다. 한국 기업은 같은 SaaS도 대규모 커스터마이징을 요구한다.

이건 회사가 보수적이어서가 아니라, 30년 동안 build 모델로 일해 온 사람들이 “표준에 맞춰 일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외주 발주에 익숙해진 조직은 SaaS를 만나도 “우리 프로세스에 맞춰주세요”가 자동 반사로 나온다.

세 번째 축 — 그룹웨어·ERP의 자체 구축 관행

대기업과 공공 부문은 그룹웨어·ERP를 SaaS로 사기보다 SI에 발주해 자체 시스템을 구축하는 모델을 유지했다. 이유는 세 가지로 정리된다.

  1. 단가 모델: 공공 발주 단가 안에서 SaaS 구독은 어색.
  2. 보안 인식: 사내망에 직접 구축하는 게 “안전”하다는 인식 (망분리 정책과 결합).
  3. 인력 투입형 평가: SI에 발주해 N명 × M개월을 받는 것이 가시적 산출물이 됨.

이 관행이 만든 부산물이 CSAP·망분리 같은 규제다. 시장이 자체 구축을 표준으로 두면 그 표준이 보안 규제로 굳는다. 글로벌 SaaS는 이 규제 위에서 진입하기 어려워진다. 진입 장벽은 별도 규제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시장 관행에서 자연 발생한 것이다.

이 점에서 한국 build 고착은 단순 “정책 실패”가 아니다. 발주 관행이 보안 규제를 만들고, 보안 규제가 다시 발주 관행을 보호하는 자기강화 루프가 작동한다.

정리 — 30년이 만든 자기강화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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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ph TD
    A[공공 SW 단가 = 인력 투입형] --> B[Build 모델 표준화]
    C[IT 외주화] --> D[사내 엔지니어링 빈약]
    D --> E[SI 산업 비대 성장]
    B --> F[자체 구축·NIH 문화]
    F --> G[CSAP·망분리 등 규제 형성]
    E --> H[글로벌 SaaS 진입 장벽]
    G --> H
    F --> I[맞춤형 커스터마이징 요구]
    I --> J[한국 SaaS 회사도 못 자람]
    H -->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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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 C fill:#fef3c7,stroke:#d4a373
    style J fill:#ffd6a5,stroke:#c98a5a

이 구조는 어느 한 점이 아니라 여러 변수가 서로를 강화하는 누적 효과다. 단가 모델 → SI 외주 → 사내 엔지니어링 빈약 → 자체 구축 문화 → 규제 형성 → SaaS 진입 차단 → 한국 SaaS 회사 성장 차단.

시점변수누적 효과
1990s인력 투입형 단가Build 모델 표준화
1990s 말IT 외주화사내 엔지니어링 빈약
2000sSI 3사 비대그룹사 IT 종속
2010s자체 구축 → 망분리·CSAP글로벌 SaaS 진입 차단
2020s맞춤형 요구 문화한국 SaaS 회사도 한국에서 못 자람

다음 — 갇힘의 비용을 본다

다음 편에서는 이 갇힘이 현재 만들어내는 비용을 본다. 글로벌 SaaS가 못 들어오는 것과 한국 SaaS가 한국에서 못 자라는 것이 같은 메커니즘의 양면이라는 사실 — 그리고 그 결과로 한국 SaaS 회사들이 일본으로 우회하는 패턴을 LINE WORKS·영림원·알서포트 세 케이스의 데이터로 본다.

출처

1편의 30년 거시 narrative는 1차 출처 인용보다 산업 통념을 정리·재해석한 성격이 강합니다. 구체 stat은 2편 케이스에서 1차 출처로 검증.


시리즈 인덱스: 한국 SaaS Build Tr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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